레트로

첫사랑은 졸업하지 않는다

1990년대 말 감성으로 만든 첫 DOS 비주얼노벨

첫 DOS 비주얼노벨을 완성했다.
제목은 「첫사랑은 졸업하지 않는다」.

2001년 2월,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의 마지막 겨울 여행을 배경으로 한 짧은 연애 어드벤처 게임이다.

요즘 게임처럼 화려한 연출이나 편리한 시스템은 없다.
640×480 VGA 화면, 제한된 색감, 정적인 이미지, 짧은 대사창, 단순한 선택지.
하지만 바로 그 느낌을 만들고 싶었다.

PC통신 자료실이나 게임 잡지 부록 CD 어딘가에 들어 있었을 법한, 조금 촌스럽고 괜히 감성적인 국산 DOS 게임.
이번 작품은 그런 분위기를 목표로 만들었다.


1995년 제작툴 ADVen

제작에는 1995년에 나온 DOS용 어드벤처 제작툴 ADVen을 사용했다.

요즘 엔진처럼 편리하지는 않다.
이미지는 16색 PCX를 써야 하고, 해상도는 640×480 VGA에 맞춰야 한다.
대사창도 좁아서 긴 문장을 마음대로 넣을 수 없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오히려 그 제약 덕분에 옛날 게임다운 분위기가 살아났다.
장면을 짧게 끊고, 대사와 독백을 압축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시절 어드벤처 게임 같은 흐름이 만들어졌다.

조작은 간단하다.
스페이스바로 선택하고, ESC를 누르면 메뉴가 나온다.


2001년 2월, 졸업여행

이야기는 졸업 직전의 겨울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친구들과 함께 겨울 바다로 졸업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유진과 조금씩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 게임은 고백에 성공해서 연인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말하지 못한 감정, 타이밍을 놓친 마음, 지나고 나서야 선명해지는 첫사랑의 기억에 더 가깝다.

졸업식이 끝나면 사람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그런데 어떤 장면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버스 창밖의 눈,
겨울 바다의 바람,
어색하게 주고받은 말,
끝내 하지 못한 한마디.

제목을 **「첫사랑은 졸업하지 않는다」**로 정한 것도 그래서다.
사람은 졸업하지만, 어떤 마음은 졸업하지 못한다.


선택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이야기

게임은 멀티엔딩 구조다.

큰 흐름은 비슷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마지막에 남는 감정과 장면이 조금씩 달라진다.
친구들과의 대화, 주인공의 생각, 유진과의 거리감, 사진을 찍는 장면도 선택에 따라 조금씩 바뀐다.

같은 장소라도 이전에 무엇을 봤는지, 누구와 대화했는지에 따라 메뉴와 문장이 달라지도록 만들었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그런 사소한 변화가 옛날 어드벤처 게임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일부러 촌스럽게 만든 게임

이번 작품은 “현대적으로 세련된 레트로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절에 진짜 있었을 법한 어설픈 국산 DOS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괜히 진지한 독백, 조금 과한 감정선, 정직한 장면 전환, 2000년대 초반 감성의 겨울 분위기.

지금 기준으로 보면 투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투박함이 이 게임의 핵심이다.

하드디스크 구석에서 오래된 게임 하나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
분명 처음 보는 게임인데 이상하게 그리운 느낌.
그런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처음 만들어본 DOS 게임

처음 만들어본 DOS 게임이라 부족한 부분도 많다.

이미지 팔레트, 스크립트 구조, 선택지 분기, 음악, 실기 테스트까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특히 음악은 마지막까지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PC에서는 괜찮게 들리던 곡도 실제 DOS 환경에서는 전혀 다르게 들릴 때가 있었다.

그래도 완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불편하고 제한도 많았지만, 그 제약 안에서 장면을 만들고 분위기를 잡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다.

**「첫사랑은 졸업하지 않는다」**는 내가 좋아하는 DOS, VGA, 겨울, 졸업, 첫사랑의 감성을 한데 모아 만든 첫 작품이다.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게임에 가장 가까운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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